<내일의 반성문> 어제 네게 준 상처를 나는 내일 또 줄 거야. 너를 위해 바뀌겠다는 사랑을 빙자한 다짐을 했다. 결국 고개를 쳐들고 난 원래 이래- 라는 무책임한 일갈로 마무리 됐지만. 그럼에도 오만하게 쳐든 턱에 입을 맞춰주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. 오늘 너의 용서를 나는 내일 또 저지르고. 견딜 수 없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역할과 용서하는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. 나에겐 너밖에 없어라는 갈망에 나에겐 나밖에 없다는 절망으로 답하는 것. 반복되는 매일은 우리를 조금씩 더 망가지게 하겠지.
<첫사랑은 인상주의 화풍> 첫사랑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. 내 첫사랑의 기억은 열다섯 살부터 스무 살 사이에 걸터앉아있다. 내가 짝사랑한 애는 같은 중학교의 농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. 몇 년 전 그 애와 내가 졸업했던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다녀왔다. 그때 흙먼지 날리며 농구하던 모습을 훔쳐보던 운동장엔 잔디가 깔렸고 교정 곳곳이 변했음에도 금세 그 애가 떠올랐다. 그리고 적잖이 충격 받았다. 5년이나 좋아했던 소년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. 그 애 특유의 분위기나 느낌은 여전히 또렷한데 자세한 것들은 떠올릴수록 희미해지기만 했다. 기억이 그림처럼 남는다면 내 첫사랑은 인상주의 화풍과도 같다.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색과 형태가 뭉개져 거친 붓 터치로만 남는. 일정한 거리 뒤로 물러나서야 형상은 나타난다. 그 애는 이제 몇 걸음 떨어진 어떤 인상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.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첫사랑의 기억은 생생하다 여긴다. 이유가 뭘까…